커뮤니티

“기부로 끝나지 말고 세상을 좋게 한 결과를 확인해야”

해마다 2억 달러 쾌척 美 기부왕 일라이 브로드



일라이 브로드는 번 돈을 생전에 모두 사회에 환원하고 싶어 한다. 사진은 올 3월 17일 뉴욕에서 인터뷰할 때의 모습. [블룸버그 뉴스]
‘기부의 천재’. 미국 억만장자 일라이 브로드(77) 전 선아메리카(보험회사) 창업자에 대한 평이다. 브로드는 최근 10년 동안 해마다 2억 달러(약 2200억원) 정도씩 기부했다. 재산이 얼마나 많기에 해마다 그 정도씩 내놓을 수 있을까? 그의 재산은 57억 달러다. 2010년 포브스 세계 부호 순위에서 132위에 올라 있다. 몇백억 달러씩을 쥐고 있는 대부호들과 견주면 그의 재산은 많다고 말하기 힘들다.

최근 10년간 브로드보다 많은 돈을 내놓은 사람들은 많았다. 세계 부호 순위 2위와 3위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나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은 200억, 300억 달러씩을 선뜻 내놓았다. 하지만 브로드만큼 ‘꾸준히’ 내놓지는 못했다. 브로드는 최근 10년 동안 미국 내 기부 순위에서 20위 밖을 벗어난 적이 없다. “브로드가 기부의 천재로 불리는 이유”라고 미국 기부 전문지인 크로니클 오브 필랜스로피가 최근 평가했다.

브로드는 뉴욕 타임스(NYT)와 LA타임스 등과 인터뷰에서 “내게 돈은 좋은 일을 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돈을 거머쥔 채 현상을 유지하며 죽음을 맞이하고 싶지 않다. 살아 있을 때 다 되돌려 주려 한다”고 말했다.

브로드의 기부 창구는 재단이다. 그는 25억 달러를 내 교육재단을 만들었다. 하버드대와 매사추세츠공대(MIT), 캘리포니아공대(칼테크), 미시간대가 그의 지원을 받고 있다. 지원 분야는 비즈니스 리더의 육성과 생명공학 연구다. 무엇보다 그는 미국 공교육 개혁에 힘을 쏟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미국 교육 시스템이 기른 산업인력은 정보시대에 맞지 않다. 이제는 학교가 정보시대에 어울리는 지식과 노하우를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2008년 그는 게이츠와 손잡고 6000만 달러를 들여 교육 캠페인을 벌였다. 미국 대통령 후보들이 교육을 최우선 정책으로 삼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미국 유명 미술관이나 박물관도 그의 지원을 받았다. 스미스소니언과 LA카운티미술관·LA현대미술관 등이다. 그는 현대미술을 적극적으로 사들여 기부하고 있다. “부호들이 좋아하는 인상주의 작품을 사 봐야 작가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재 작품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을 지원해야 예술 수준이 올라간다.” 브로드가 현대미술 작품을 고집하는 이유다.

부동산·보험으로 종잣돈 마련
브로드가 살고 있는 곳은 캘리포니아다. 그의 고향은 아니다. 그는 자동차의 도시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났다. 브로드는 미시간대를 졸업한 뒤 공인회계사가 됐다. 그는 23세인 1956년에 회계사 사무실을 열었다. “내 고객은 주로 주택건설회사들이었다. 그들의 재무제표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어디서 어떻게 돈을 버는지 잘 알게 됐다.”

그는 회계사 사무실을 접었다. 대신 2만5000달러를 빌려 KB홈이라는 주택건설회사를 차렸다. “당시 나는 결혼해 아이 하나를 낳았다”며 “그 아이 때문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며 모험적인 기업가 정신이 가슴속에서 일렁였다”고 말했다.

처음 집 11채를 지어 팔기까지 3년이 걸렸다. “그 기간은 불안의 연속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 경제의 전성기(The go-go years)인 60년대 브로드의 집 장사는 대박을 터뜨렸다. 그는 백만장자 반열에 올랐다.

71년 브로드는 다시 한번 결단했다. KB홈의 이름으로 보험회사를 하나 사들였다. 이른바 사업 다각화였다. 연금보험을 주로 팔았다. 집 장사와 마찬가지로 초기에는 고전했다. 하지만 미국의 베이비부머 세대가 본격적으로 노후를 걱정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70년대 중반 이후 그의 보험사업이 번창했다. 그는 89년 보험 부문을 분리·독립시켰다. 선아메리카라는 보험회사가 탄생했다. 보험사업 18년 만이다.

브로드는 “내 사업은 모두 타이밍이 절묘했다”며 “베이비부머들이 결혼해 집이 필요할 때 주택을 지어 팔았고 그들이 노후 생활을 준비할 때 보험을 팔았다”고 말했다.

보험회사 선아메리카는 80년대 후반 지분 가치가 급등했다. 90년에는 LA에 162m짜리 고층 사옥을 세우기도 했다. LA 교민 사이에 유명한 선아메리카센터다. 10년 뒤인 2000년 브로드는 선아메리카를 AIG에 팔았다. 매각 대금이 180억 달러에 달했다. 주당 74.8달러로 장부가의 여섯 배 수준이었다. 당시 월가 전문가들은 “브로드가 아주 절묘한 순간에 절묘한 가격으로 선아메리카를 팔았다”고 평가했다.

브로드는 선아메리카를 팔아 치운 뒤 인생 2막을 시작했다. 본격적인 기부 인생에 뛰어든 것이다.

기부도 회사 경영하듯 효율따져
미국발 금융위기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인 2008년 11월 브로드는 방송에 자주 출연했다. 그가 주요 주주인 AIG가 흔들리고 있어서였다. 질문은 위기의 주역인 최고경영자(CEO) 모리스 그린버그의 경영에 대한 평가였다. 그는 “그린버그가 AIG를 초대형 보험회사로 키웠지만 (신용파생상품 거래 등으로) 정통 보험업에서 일탈해 위기를 자초했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인터뷰 후미에는 늘 그에게 경제와 재테크 전망을 묻는 질문이 빠지지 않았다. 워런 버핏만큼은 아니지만 브로드는 뛰어난 재테크 수완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브로드는 20여 개의 펀드에 돈을 맡겨 두고 있다. 시어도어 포츠먼이 운용하는 포츠먼리틀에 적잖은 돈을 맡겨 재미를 봤다. 이 펀드는 돈을 빌려 기업을 인수하는 차입매수(LBO) 펀드다. 브로드는 닷컴 열풍이 분 90년대 후반 포츠먼리틀에 돈을 맡기는 방식으로 벤처 투자를 했다. 이 펀드는 닷컴 열풍이 절정이던 순간에 일본 소프트뱅크 등에 벤처기업을 팔아 2~3배의 수익을 올렸다.

이 밖에 2008년에 숨을 거둔 전설적 펀드매니저인 존 내시가 설정해 운용한 헤지펀드 오디세이와 데이비 본더먼이 운용한 사모펀드 텍사스퍼시픽그룹(TPG), 투자은행 골드먼삭스가 설정·운용하는 뮤추얼펀드 등에도 돈을 맡겨 불렸다. 펀드매니저를 잘 고르는 그의 능력은 자선단체의 자금을 주로 유치해 폰지사기를 벌인 버나드 메이도프 같은 인물의 마수에 걸려들지 않도록 했다.

브로드는 “화려한 명성보다 펀드매니저가 펀드와 숙식뿐 아니라 운명을 같이할 만한 인물인지를 중시한다”며 “예를 들면 포츠먼은 손실을 기록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 듯한 펀드매니저”라고 말했다. 그가 이런 펀드매니저를 고집한 덕분에 미국 경제와 증권시장이 흔들린 2001년과 2008년에도 브로드의 기부 액수는 1억 달러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첨단 펀드를 좋아하지 않는다. 수학이나 물리학 원리를 동원해 시장 평균치보다 더 많은 수익을 돌려준다는 ‘퀀트’들이 “카지노 판을 자기 입맛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고 그는 꼬집었다.

최근 브로드는 미국의 경제 상황을 걱정했다. 그는 “위기 이후 미국 경제가 침체했다가 새로운 정상 상태(Steady State)에 이를 것”이라며 “하지만 새 정상 상태의 성장률은 이번 위기 이전보다 낮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성장률이 위기 전만 못 하면 전반적으로 주가 상승률이 떨어져 그의 자산 수익도 줄 수 있다. 그의 기부액수가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포브스 세계 부호 순위 132위의 유대계
브로드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부드럽다. 참선한 파란 눈의 스님처럼 느껴질 정도다. 그러나 뉴욕 타임스는 그를 “기부의 천재이면서 전제군주”라고 평가했다. 그는 돈을 주고 알아서 하라는 자선사업가가 아니라는 얘기다. 그는 회사를 경영하듯 모든 일을 파악하고 장악한다. 좋을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가혹할 정도로 몰아붙였다.

교육 개혁 프로젝트를 브로드와 같이한 적이 있는 하버드대 로랜드 프라이어(경제학) 교수는 “오스트리아에서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내고 있는데 브로드가 전화를 해 와 진행 중인 교육 자선사업 내용을 놓고 장시간 이야기했다”며 “그는 자선사업이라고 대충하지 않는다. 기대한 결과를 얻지 못하면 자선사업 실무를 맡은 사람을 부숴 놓을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브로드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는 살아 있는 동안 결과를 내고 싶어 한다. 그는 “숨을 거두기 직전에 돈을 기부해 얼굴을 알지도 못하는 유산 관리인들이 자금 사용을 결정하도록 하고 싶지 않다”며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사업을 벌여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또 “일단 사업 방향과 계획이 잡히면 기대한 결과를 내고 싶다”고 덧붙였다.

철저하게 투입과 산출을 관리하는 게 브로드 자선사업의 특징이다. 그는 사업 실적을 평가하듯 구체적인 잣대로 기부한 돈이 어떤 결과를 냈는지 평가한다. 예컨대 브로드는 그가 기부한 캘리포니아 지역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입장객이 늘어나거나 다른 후원자들의 기부가 더 증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헛돈을 썼다고 판단한다.

그는 게이츠와 교육 개혁 운동을 벌이면서 신문과 방송이 ‘교육 개혁’을 주제로 얼마나 많은 기사를 보도했는지를 따져봤다. 그 결과 2008년 대통령선거 시즌에 교육 개혁 캠페인이 효과를 내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부질없는 짓을 했다”며 그 캠페인에 더 이상 기부하지 않았다. 그는 “기대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데 돈을 쓸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브로드가 제왕적으로 자선사업을 관리하는 바람에 미술관의 이사 등과 갈등을 곧잘 빚었다”며 “하지만 철저하게 결과를 따진 덕분에 그의 기부는 아주 좋은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고 최근 평가했다. 그의 바람대로 미국이라는 사회가 좀 더 나은 쪽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